네 편의 시

홍성란

낙뢰

지상에서 맺지 못한
너와 나 만나서

푸른 깃 부딪치며
서러운 밤 포효할 때

불씨들 기립한 천지
찬미하라
이 절정

 

먼길

세상이 연(蓮) 이라면 꽃만 보았을 거야
백일맞이 아기 두 볼같이 솟아오른
더러운 물에 살아도 물 묻지 않는 꽃

콩알처럼 웅크리며 세상을 비켜 가던
벌레는 알몸으로 긴 겨울 건너와서
따뜻이 피 돌지 않는 나의 몸 문지른다

그래, 피가 돌고 이슬 같은 눈물 고여
진흙 속 연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연초록 오월의 양지 다시 펼쳐 놓으리

하늘에 닿지 못한 어린 나의 기도는
난간에 선 아기처럼 푸른 바람 불 때마다
굽이진 연잎 구른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물시계

외로우니까 집을 짓고 외로우니까 꿈을 꾼다

꿈 깨어 그리움의 집에 사람을 가둔다

하나도,
억울할 것 없는 물시계 가고 있다



따뜻한 슬픔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맘 접어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숫눈길
         따뜻한 슬픔이
         딛고 오던
         그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