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미쳤어요? 이게 병으로 파는 것보다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
“마셔, 더우니까. 잔소리 말고.”
“덥다고 벌써부터 돈을 물 쓰듯 할 참예요? 아직 바다는 구경도 못했는데. 난 안 마셔요.”
아내는 고개를 돌렸다. 땀방울이 그녀의 코끝에 매달려 떨어질락 말락하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났고,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혼자서 두 잔의 음료수를 다 마셔버렸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시선을 돌린 채로 알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합실 안은 사람들이 저마다 피워올리는 더운 김과 땀으로 흡사 도축장처럼 후끈후끈하고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농부인지 어부인지 얼굴이 흙빛인 사람들, 후줄그레한 옷의 늙은이들, 외출을 마치고 귀대하는 몇 사람의 군인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더위에 지친 얼굴들이었다. 상철은 그 중에서, 역시 얼굴이 흙빛이고 후줄그레한 차림의, 더위를 잊어버리게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겠다는 표정을 한 중년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차는 몇 분마다 있습니까?”
“십 분마다 한 대씩 떠나유.”
사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아까 매표구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똑같은 대답을 똑같은 억양으로 말했다.
“벌써 십오 분, 아니 이십 분이나 기다렸는데요?”
“맘 내키지 않으문 한 대씩 빼묵고 그래여. 차가 웂어서 못 가지, 사람이 웂어서 못 가진 않으니께.”
“피서철인데도 이렇게 결행을 합니까?”
“서울서 피서 왔다는 사람덜이 누가 이런 털털이 버스를 이용헌댜. 우리 겉은 촌것들이나 고맙다구 타지. 길바닥에 널린 것이 택시구 역앞에 나가문 그 뭐시어 피서객 특별 수송 관광버스라는 것두 있는디.”
하다가, 사내는 비로소 그들 내외의 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쪼끔만 기다리시오. 곧 들어오긴 올 거유.”
긴가민가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상철의 눈에도 대합실의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서울서 온 팔자 좋은 피서객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누가 뺏을세라 배불뚝이 여행가방을 한사코 손에 쥔 그녀는 유행이 지난 물방울무늬의 원피스 차림에 오늘따라 왠지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군데군데 얼룩진 땀이 그녀의 얼굴을 몹시 지쳐 보이도록 했고, 동시에 더욱 고집스럽게 보이게도 했다.
길바닥에 널린 것이 택시고, 피서객 특별 수송 관광버스라는 것이 역 앞에 항시 대기하고 있는 줄은 그들도 알았다. 또한 택시는 해수욕장까지 요금이 삼천 원, 관광버스는 오백 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용버스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털털이 버스는 한 사람당 백이십 원이었다.
그들이 대천에 도착한 것은 지금부터 한 시간 전, 열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서울역을 떠나 수원, 천안, 홍성을 거쳐 주로 서해를 끼고 달리는 장항선 통일호 열차는 피서객들로 초만원이었는데, 거의 네 시간 만에야 짜증과 무더위에 녹초가 된 그들을 대천역에 풀어놓았다. 내리자마자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올 것으로 생각했던 상철은 조금 실망했었다. 대천 읍내는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다른 어느 소도시의 역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피서객들만 아니라면 근처에 바다가 있다는 증거는 아무 곳에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바다는 차로 삼십 분쯤 더 나가는 곳에 있었고, 역 광장에는 그들을 실어 나를 관광버스와 택시가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굳이 고집을 부려서 그것들을 마다하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이곳 공용버스 주차장까지 온 것이었다.
“촌사람 인심이 좋기는 좋은가벼. 택시구 관광버스구 일류로 된 건 다 외지에서 온 사람덜한테 뺏기구, 정작 우리네야 이런 고물차 타는 걸로 만족허니께.”
그 중년 사내는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허긴 그게 촌사람 인심이 아니라 돈인심이겄지만.”
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일시에 웅성거리며 출구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하자,
“어이쿠, 차가 왔구만이라.” 엉덩이에 깔고 있던 비료 푸대 같은 짐 꾸러미를 들고 느린 말투와는 달리 잽싼 동작으로 달려나갔다. 이제까지 질펀하게 늘어졌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가느라 대합실 안은 금방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훈련이나 받은 것처럼 재빨리 버스 안으로 뛰어올라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무표정을 하고 있던 늙은이들조차도 자리를 잡느라 허둥지둥했고, 일단 자리에 앉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무표정으로 돌아가서 바로 자신의 발 앞에 벌어지는 소동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상철이 아내와 버스에 올랐을 때는 이미 만원이었다. 차는 서울의 시내버스처럼 좌석이 하나씩이고 통로는 넓게 되어 있었는데, 털털이란 이름에 걸맞게 낡아빠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버스 안을 다 메운 뒤에도 차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막상 차를 타자 별로 바쁠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등허리가 물에 빠진 것처럼 땀에 흠뻑 젖은 작업복 차림의 젊은 사내가 누군가와 장난을 치다가 문간에 냉큼 뛰어올라 “내가 갔다올 동안 그놈의 주둥아리 성하게 보관하고 있어라. 얼른 한탕 뛰고 와서 형님이 버릇 좀 고쳐주게. 알겠냐, 십새끼야.” 밖을 보고 소리 지르며 낄낄대더니, 마침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영감에게, “어이쿠, 나오셨어유?” 하고 인사를 했다. 그 청년은 승강구에 매달린 채 손바닥으로 차를 땅땅 두드리며 “오라잇!” 하는 걸로 봐서 아마 차장인 모양이었다.
정류소가 따로 없는지 차는 읍내를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손을 드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지 멈추어 실었고, 그래서 차 안은 갈수록 복잡하고 무더워졌다. 상철은 “그러게 내가 뭐랬어. 기껏해야 몇백 원 아끼려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 하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원래 차멀미에 약한 아내는 빈속에 피로가 겹쳐 속이 울렁거리는지 몹시 창백한 얼굴이었다. 서울을 떠나고 나서 아내가 먹은 것은 가락국수 한 그릇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집스런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바야흐로 힘든 싸움을 시작하는 듯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그녀의 표정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고집 센 어린애 같은 안간힘이 있었는데, 감출 수 없는 피로가 그녀의 안간힘을 더 안쓰럽고 위태롭게 보이도록 했다.
“미쳤어요? 우리 형편에 무슨 바캉스예요?”
그가 처음 피서 얘기를 꺼냈을 때 아내는 대뜸 그렇게 말했었다. ‘미쳤어요?’ 하는 것은 그녀의 말버릇이었다. 결혼 전 그들이 형식적인 연애라는 것을 하고 있을 무렵, 그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더듬어 잡았을 때도 그녀의 반응은 “어머, 미쳤어요?”였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몸을 꼬부리고 마는 작은 배추벌레처럼, 그들이 사소한 말다툼을 나눌 때나, 이를테면 그가 “어이, 오늘 저녁에 나가서 외식이나 할까?” 했을 때처럼 주로 돈 쓸 일과 관련되었을 경우, 심지어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를 해주었을 때도 “미쳤어요, 당신?” 하는 것이 그녀의 버릇이었
고, 그 말 뒤에는 으레 어린애 같은 고집이 기다리고 있기가 십상이었다.
“한번 집을 떠나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올 때 갈 때 차비 들죠, 잠자야죠, 밥은 누가 공짜로 먹여주나요? 움직일 때마다 돈이라구요.”
“누가 돈 드는 줄 모르나. 그러지 말고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한번 쐬고 오자구.”
“기껏 콧구멍에 바람 쐬려고 아까운 돈을 뿌려요? 가계부에 나는 구멍은 생각 못하구요? 난 안 가요. 정 가고 싶으면 혼자 갔다오시라구요.”
“이번만은 나도 물러설 수 없어. 안 가면 끌고라도 갈 테니까.”
“도대체 당신답지 않게 왜 이래요? 꼭 바캉스에 한 맺힌 사람처럼.”
“그래. 난 바캉스에 한 맺혔어. 그러니 알아서 하라구.”
저녁 내내 맞서다가 결국 아내가 고집을 꺾은 것은 상철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그놈의 바캉스라는 것을 그렇게 부득부득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름 휴가철이 슬금슬금 다가오면서부터 사무실 내의 분위기가 묘하게 들뜨기 시작하는 것을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으로 건너다보았을 뿐이었다. 위로는 부장에서부터 타이피스트 미스 김까지 틈만 나면 해수욕장은 어디가 좋고 교통편은 어느 쪽이 편리하다는 등의 얘기였고, 나중엔 여성잡지 부록으로 끼여 나오는 관광 지도까지 등장해서 도처에서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렇듯, 그런 분위기에 쉽게 섞여들 수가 없었다.
고학으로 어렵게 지방 대학을 나올 때까지 상철은 바캉스는 고사하고 그 흔한 등산 한번 제대로 가본 경험이 없었고, 지금도 왠지 그런 것들이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얘기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이 앉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부장과 과장 사이에, 또 과장과 타이피스트 미스 김 사이에 ‘콘도미니엄’ 예약이 어떻고, 날짜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머리 위를 오갈 때마다, 그에게는 그저 그 ‘콘도’ ‘콘도’ 하는 말이 엉뚱하게도 피임 기구의 이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는 밤마다 그 고무 제품으로 된 피임 기구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전까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아내의 확고부동한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매표구에서 표 파는 사람은 해수욕장까지 삼십 분 걸린다고 했는데, 중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삼십 분이 지나도 바다가 나타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많아서 갈수록 승객들은 점점 줄어가는 것이 바다가 가까워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좌석은 쉽게 나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서 상철은 그녀가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시작할 것 같아 조바심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창밖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상철은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그녀에게는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가져야 마땅할 기대에 찬 설렘이나 들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뜻을 받아들여 휴가를 떠나기로 한 뒤, 그녀는 최소한의 경비를 들이는 알뜰 휴가 계획을 짜느라 하루 저녁 내내 계산을 하며 궁리를 했다. 회사에서 받은 휴가 날짜는 나흘이었지만 바캉스는 2박 3일로 결정되었다. 행선지를 대천 해수욕장으로 정한 것도 무엇보다 서울에서 가깝고 따라서 차비가 적게 든다는 그녀의 주장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부터 그녀에게 바캉스란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지겨운 싸움이었을 뿐이었다.
길가에 빨간 우체통이 서 있는 어느 담배 가게 앞에 차가 섰을 때, 그들의 앞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자리를 비웠다. 아내가 그 자리에 쓰러지듯 앉자, 사내가 내리고 난 차 문으로 커다란 보따리 하나가 들어오더니, 그 뒤를 머리가 반쯤 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따라 올라왔다. 보따리가 별로 무겁지는 않은 모양인지 한 손으로 냉큼 들고, 차를 타기 전에 미리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하필이면 아내가 앉은 자리 옆으로 곧바로 다가왔다. 아내가 마지못해 주뼛거리며 일어서자,
“앉아 기셔유. 곧 내릴 텐디, 뭐.”
하면서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리에 엉덩이부터 걸쳤다.
“결혼 잔치에 갔다가 못 먹는 쐬주를 억지로 한잔 받아 마셨더니, 안 그려도 더운디 속에 불이 나는 것 같네, 그랴.”
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쌔깽이도 키울 때 말이지, 요즘에사 죽 써서 개 준다고 넘 좋은 일만 시키는 거여. 근디, 색시 워디 몸이 불편한감유?”
“아니, 괜찮아요. 할머니.”
“얼굴색이 말이 아닌데 그랴. 이리 앉어유. 나야 맨날 댕기는 길인디 자리가 있으문 앉구, 웂으문 서서 가구 그래유. 이리 앉으래니께유.”
그러자 그들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휙 고개를 돌려 보더니, “여기 앉아유” 하고 화난 듯이 한마디 던지고는 성큼성큼 차 앞쪽으로 걸어가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이 짐 보따리를 챙기는 것으로 봐서 내릴 때가 다 된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렸을 때, 상철은 이제부터 여름 휴가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고되고 힘든 여행을 모두 끝마치는 것처럼 피곤하고 허탈했다. 여관이나 식당 같은 건물 사이로 시퍼런 바다의 한 부분이 보였다.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도 바다는 항상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잠깐 넋을 잃고 바다를 보았다.
“맡아봐. 바다 냄새야.”
“아녜요. 바다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예요.”
아내가 말했다. 바다의 것인지 해수욕장에서 바글거리는 사람의 것인지 여하튼 비릿한 냄새를 가득 실은 바람이 그들의 코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민박하세요, 민박.” 갑자기 그들 주위를 얼굴이 새까만 꼬마들과 여자들이 둘러쌌다. 아내가 물었다.
“방 하나 쓰는 데 얼마예요?”
“며칠 묵으실 건데?”
“이틀 밤예요.”
“2박이면 만오천 원예요. 어디 가나 똑같애.”
“아줌마. 깨끗한 방 있어요. 우리 집으로 가요. 해수욕장도 가깝구요, 샤워장도 있어요.”
그러나 아내는 그들을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인지 차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해수욕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무슨 이야긴가 하고 있다가 다시 돌아온 그녀는, “해결됐어요, 여보. 만 원에 하기로 했어요” 하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런 곳에서 민박은 값만 비싸단 말예요. 내가 할머니한테 빈방이 있느냐고 했더니, 있대요. 그래서 만 원 드릴 테니 이틀만 쓰자고 했어요.”
상철이 눈만 멀뚱거리고 있자, 그녀가 팔을 잡아끌었다.
“자, 가요.”
“글씨, 이렇기 혀도 되는가 모르겄네유. 영감헌테 상의도 않고 말이여.”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저희들이 영감님께 말씀드릴게요.”
“시방은 아마 밭에 나갔을 거구먼. 우리 영감이 황소고집인디. 워쩐댜.”
그들은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버스 길을 조금 걸어가다가, 논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너무 멀지 않아? 아무래도 숙소는 바다와 가까워야지.”
“괜찮아요. 운동 삼아 걸으면 되잖아요. 멀면 얼마나 멀겠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좀체 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걸어갔다. 햇빛이 머리 위에서 그들을 지독하게 두들겨대었고, 땀이 얼굴을 타고 툭툭 떨어져 어깨에서 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피곤했고, 동시에 이미 지치고 무력해진 신경이 다시 한번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의 집은 걸어서 십오 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었다. 낡은 집을 지붕만 개량을 했는지 연기로 그을린 흙벽에 어울리지 않게 주홍색 슬레이트 지붕이었고, 산자락 한 귀퉁이의 아카시아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제법 고즈넉했다. “방이 누추해서 워짠대유.” 할머니의 말대로, 방은 몹시 지저분했다. 헛간으로 사용하는지 흙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윗목에는 곡식 가마들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아내도 조금 실망했는지,
“이만하면 좋잖아요. 여기서도 충분히 피서할 수 있겠어요. 보세요, 울창한 숲 있죠, 시원하죠. 또 얼마나 조용해요.”
짐짓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조용하고 시원하다고 해서 여기까지 피서를 와서 남의 집 구석방에서만 뒹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을 대충 정리하고 짐을 푼 다음, 그들은 다시 뙤약볕 아래를 한참 걸어서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들은 두어 시간쯤 바다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등허리가 햇볕에 따가워졌을 무렵에야 돌아가기로 했다. 탈의장에 가서 옷을 입기 전에 우선 몸을 씻어야만 했다. 그들은 탈의장과 나란히 붙은 샤워장으로 갔다.
헛간 같은 건물의 벽에 ‘샤워장,’ 그리고 ‘300원’이라는 페인트 글씨가 적혀 있었고, 입구에는 밀짚모자를 덮어쓴 남자가 음료수가 든 상자들과 물놀이 기구들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그들이 들어가면서 천 원짜리 지폐를 내밀자 “그냥 들어가슈. 돈은 내가 받는 게 아니유” 했다. “그냥 들어가다뇨, 공짜라는 얘긴가요?” 상철이 말하자,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이마에 주름이 많은 그 남자는 눈을 흘겨뜨며, “그 양반 말씀 모질게 하시네. 누구 좋은 일 시키고, 누구 죽으라고 공짜로 혀? 들어가 보슈, 돈은 기계가 받으니까.” 기분 나빠할 틈도 주지 않고 사내가 고개를 돌렸으므로, 기계가 돈을 받는다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공중변소처럼 건물 가운데로 블록 담이 신사용과 숙녀용으로 갈라놓고 있었고, 그 블록담 좌우로 역시 공중변소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매달린 샤워기 밑에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가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샤워기마다, ‘자동 샤워기, 300원, 100원짜리 동전만 됩니다’ 하는 판때기가 붙여진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동전을 집어넣어야 물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가 다시 밖으로 나오자 입구에는 벌써 그의 아내가 나와 있었다. 둘 다 동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밀짚모자를 쓴 문간의 사내는,
“미안하지만, 바꿔줄 동전이 없어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아니 왜 안 바꿔준다는 겁니까? 동전을 바꿔주지 않으면 어떻게 샤워를 해요?”
“내가 언제 안 바꿔준다고 했소. 돈이 없다고 했지.”
“어머, 기가 막혀. 저 많은 동전은 다 어디 쓰는 거예요?”
아내가 백 원짜리 주화가 가득 담긴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사내는 비로소 고개를 돌리더니 이마의 주름살을 잔뜩 만들어내면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이 동전들을 어디다 쓸 건지 아줌니가 꼭 알아야 되겠소?”
“네, 꼭 알아야 되겠어요.”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예의 그 지지 않으려는 듯한 고집스런 표정으로 사내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는데, 정작 사내는 뭐 꼭 흥분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누가 물건을 사면 거스름돈으로 내줄 거요. 이제 되었소?”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동전을 바꾸려면 뭔가 물건을 사야 했다.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할 수 없어. 백 원짜리 껌이라도 하나 사자구.”
“백 원짜리 껌은 없시다. 미안하지만.”
“그럼 뭐가 있소?”
“보시다시피 먹는 거라곤 콜라밖에 없어요.”
“그건 얼맙니까?”
“칠백 원이요.”
아내가 비명 같은 소릴 내질렀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이런 바가지가 어디 있어요.”
사내가 손을 들어 밀짚모자를 벗더니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굴의 다른 부분에도 주름살이 많았다.
“이것 보쇼. 당신들은 놀러 온 것이지만 내겐 이게 먹고 살라고 하는 짓이요. 일 년 열두 달 가게 문 열어놓고 있는 장사꾼하고, 우리처럼 메뚜기 한철 벌어먹는 장사꾼하고 물건값이 같겄시요? 우리도 세금 물고, 임대료 내고, 물은 뭐 땅에서 그냥 솟는 줄 아쇼? 그리고, 저어기 비치 파라솔에 앉아서 콜라 한 잔 먹으면 오백 원 해요. 그럼 한 병이면 얼마요? 서울 사람들 다방에서 마시는 콜라 한 잔 값은 또 얼마고?”
“여보, 가요.”
아내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다니, 어딜 가?”
“아니 그럼 물 한 동이 끼얹는데 천 원씩 주고 할 셈이에요? 당신하고 나 두 사람이면 이천 원예요. 차라리 콜라로 샤워를 하는 게 낫겠어요.”
“그렇다고 몸을 안 씻을 순 없잖아.”
“조금만 참으면 민박한 집 뒤안에서 얼마든지 물을 뒤집어쓸 수 있어요. 뻔히 눈 뜨고 보면서 돈을 뺏길 순 없잖아요.”
그는 번번이 자신을 맥 풀리게 하는 단단한 껍질 같은 것이 아내의 얼굴에 덮씌워진 것을 보았다.
상철은 잠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람들의 아우성과 무더위가 정점에 달해가는 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 넓게 펼쳐진 모래밭의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는 요란한 음악이 악을 쓰고 있었고, 울긋불긋한 크고 작은 천막들이 모래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삼각형으로 된 그 작은 구조물들 속에서 사람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버너에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좁은 공간 속에서도 사람들이 이제까지 해온 삶의 방식과 관습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는 것에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것은 사람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기실 얼마나 보잘것없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셈인데,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첨벙거리는 그 너머, 끝간 데 없이 유유히 펼쳐져서 일렁이는 바다와 대비해본다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비교 따위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상철은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이곳에서의 유일한 미덕이 오직 쾌락과 욕망의 향유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들로부터 외롭게 떨어져서, 거대한 군무(群舞) 속에서 끈이 풀어진 인형처럼 무모하고 허망한 춤을 추고 있는 셈이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찾은 뒤 그녀가 뒤도 안 보고 걸어갔기 때문에 그는 어쨌든 그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부지런히 걸어 모래밭을 빠져나왔다. 모래밭이 끝나는 곳에 여관이나 휴게실, 식당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그 너머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역시 비슷한 업종의 비슷한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건물들마저 지나서 몇 채의 민가 사이를 빠져나오면 바로 논이고 밭이었다. 농약 냄새를 풍기며 시퍼렇게 벼들이 일렁거리는 논 사잇길로 들어서자 상철은 비로소 자신들이 우스꽝스럽고 바보스러운 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씻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아직 수영복 차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래밭에서와 달리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는 대단히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부도덕하고 뻔뻔스러운 모습이었다. 논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허리를 펴고 바로 그런 눈길로 무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새삼스레 논두렁 가운데서 옷을 꿰어 입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민박한 할머니의 집까지는 적어도 십 분 이상은 더 걸어야 하는데, 갈수록 더 뻔뻔스러워지고 부도덕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햇빛은 아직도 뜨거워서 등허리는 다시 땀으로 젖었고, 씻어버리지 못한 소금기가 모래알처럼 따가웠다. 아내는 좀체 입을 열지 않고 고집 센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멀리 물러앉은 산과 푸른 논들과, 그 사이로 난 논두렁길 등의 배경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수영복 차림의 그녀의 빈약한 몸매, 육감적이 아니라 희화적인 엉덩이의 움직임, 그리고 고집과 땀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보자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에 울화가 끓어올랐지만, 화를 내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밖으로 표출되지 못한 울화는 그저 자책감과 부끄러움으로 변해서 이번에도 그의 속에서만 매운 연기를 피어올렸을 뿐이었다.
민박한 집의 삽짝문에 들어서자, 삽자루에 달라붙은 개흙을 긁어내리고 있던, 몸이 바싹 마르고 햇빛에 까맣게 탄 늙은 영감이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허리를 폈다. 밭에서 돌아온 주인영감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아마 영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판 처음 보는 젊은 남녀가 반벌거숭이의 모습으로 자기 집 삽짝문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을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두 눈은 경악의 표정으로 크게 떠진 채 수영복 차림의 그들을 보았다.
“누, 누구여?”
“민박한 사람입니다, 영감님.”
“민, 뭐시여?”
“민박 말입니다. 아까 할머니께서 저 뒷방을 쓰라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가를 생각하는 듯이 영감은 여전히 눈을 뜬 채 반응이 없었다.
“저, 당분간 신세를 좀 지게 되었습니다, 영감님.”
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하자, 영감은 대꾸도 없이 삽자루를 홱 던져버리고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탁탁 소리 내어 털면서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좀더 분명한 반응은 상철이 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고 있을 때 들을 수가 있었다.
“돈만 주문 조상 신주꺼정 팔아묵을 챔인감.”
하는 것은 영감의 목소리였고,
“누가 조상 신주 팔아묵는다 했남유. 그저 놀고 있는 빈 방인디 워때서 그래유. 가만히 앉아만 있어두 생기는 돈인디. 하루 온종일 밭에 나가서 땅 파봤자 그게 돈으로 치면 월마래유.”
하는 것은 노파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안 혀고도 지금꺼정 살아왔어. 기껏 돈 몇 푼 구경하자구 이 나이에 방 내놓고 장사허란 말여?”
“우리 집이야 해수욕장에서 머니께 그렇지, 저어기 아랫동네만 혀도 민박 안 하는 집이 있남유?”
“아무리 배운 것 웂는 도시것덜이라도 그렇지, 여기가 워디라고 벌거벗고 다니는겨. 벌건 대낮에.”
“흥분허지 말어유. 듣겠시유.”
“들으라고 혀. 나는 그런 꼴 못 보겠으니께.”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들으며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부끄러움은, 아내가 마른 수건에 비누를 싸서 들고 와 “왜 그러고 있어요. 빨리 물 길어 올리지 않구요. 등물 해드려요?” 했을 때 아내에 대한 짜증과 울화로 변했으므로 “여기서 어떻게 등물을 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하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어머, 우물가에서 등물을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해요. 별소리 다 듣겠네. 엎드려요, 어서.”
하는 말로 그의 울화를 간단히 불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그는 아내가 그의 손에서 두레박을 빼앗아 물을 길어 올리면서 “참, 좋은 생각이 났어요. 내일 해수욕장으로 갈 땐 미리 물을 준비해 가지고 가죠. 물통에다가 우물물을 담아가는 거예요. 샤워하는 데 많은 물이 필요 있어요? 그저 소금기만 빼면 되는데, 잔돈 때문에 시비할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아요?” 했을 때 그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몸을 씻고 나서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버너의 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밥을 끓이는 동안 방금 물을 끼얹은 몸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러나 밤이 되자 상철은 어쩌면 이곳을 숙소로 잘 얻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누워 쳐다보아도 하늘의 별이 보였다. 별들은 쏟아질 듯 초롱초롱하게 많았다. 그리고 바다 쪽에서 부는 바람이 집 뒤 아카시아 숲을 흔들어주었고,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들은 나란히 누운 채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쳤다. 아내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반듯이 모으고 누워 있었다. 그의 손이 아내의 옆구리와 팔꿈치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진 채로 한참 머물러 있었고 아랫배가 그녀가 숨쉬는 데 따라 오르락거리고 있었을 뿐 두 사람 다 그 손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린 것처럼 그 자세대로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자 아내의 뱃속에서 꼬르락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무슨 비명처럼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땀이 그의 손바닥과 아내의 맨 살갗 사이에서 저항했다. 바깥 어둠 속에서 풀벌레가, 그리고 더 멀리서는 개구리들이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그가 아내의 잠옷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을 때, 갑자기 그녀는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뭘 하시려는 거예요?”
“가만있어 보라구.”
그러나 그의 손을 잡은 아내의 손아귀 힘은 의외로 강했다.
“안 돼요. 기구가 없어요.”
“그 까짓 놈의 기구야 없으면 어때.”
기구란 그들이 늘 쓰는, 피임을 위한 고무 제품을 뜻했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아내를 끌어안았다.
“어때, 좋잖아. 분위기도 그렇고.”
“안 된단 말예요.”
아내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그를 밀쳤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은근하게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잠만 자고 갈 거야? 휴가 기분도 있는데.”
“미쳤어요, 당신?”
그는 아내가 그때 자신에게 특별히 무슨 모욕을 줄 생각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휴가 기분 때문에 우리들의 모든 것을 망치자는 거예요?” 하는 그 다음 말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이런 경우 아내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 생각났고,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그 말을 꼭 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젠장할. 미친 건 내가 아니고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야말로 돈에 미친 여자야.”
하고 말았다.
“뭐예요?”
그는 두 사람 사이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자기가 먼저 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깨달음이 더 많은 말을 쏟아놓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픈 부분을 찔러대기 시작했고, 그들의 무기는 양쪽에 날을 가진 창과 같아서 상대를 찌를수록 자신의 몸에도 피를 흘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미친 듯이 찌르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그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어둠 속에서 아내의 흐느낌을 속수무책으로 듣고 있자니까, 문득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맹렬한 적개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일순간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살의처럼 무섭도록 분명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지쳐 있음을 알았다.
언젠가 그는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한 적이 있었다. 벨을 누르려고 했을 때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별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리는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서 대낮인데도 어두웠고, 아내는 그가 들어온 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디스코인지 고고인지 괴상한 손짓과 발짓으로 온몸을 무질서하게 흔들어대는 춤이었다. 음악의 미친 듯한 곡조에 따라 아내의 사지가 숨가쁘게 움직였다. 눈을 감은 채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눈치를 채기 전에 얼른 현관문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갑자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멍청하게 서 있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무슨 끔찍한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었다. 춤추는 즐거움보다는 고열에 들떠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다시 계단을 올라간 것은 하릴없이 삼십 분 이상을 보내고 난 뒤였다. 이미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연거푸 벨을 눌러대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타난, 믿을 수 없이 여느 때와 변함없는 아내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상철은 그때의 그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내의 어떤 모습 위에서도 환각처럼 나타나곤 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상철은 어둠 속에 누워 생각했다. 무엇이 그녀를 어두운 방 안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듯이 춤추도록 했을까. 하루하루를 싸움하듯 살아가는 여자, 열 평 전세 아파트를 탈출하고 오로지 내 집 마련이 소원인 여자, 일당 오천 원의 파출부도 마다않는, 한 달 곗돈 십오만 원에 매달리는 여자, 입술연지 한 번 바르길 인색해 하는, 작고 고집스러운 여자, 어둠 속에서 풍선 불듯 피임기구에 직접 바람을 불며 확인하는 여자. 그런데 무엇이 마법의 주문처럼 두껍고 강고한 빗장을 풀고 그 여자의 내면 깊은 곳에 갇혀 있는 자를 풀어주었을까.
비로소 상철은 자신이 왜 그토록 바캉스 떠나기를 고집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도 그녀는 외롭고 지겨운 싸움을 계속했을 뿐이었다.
그는 돌아누운 아내의 어깨너머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얼굴에 손이 닿자 물기가 손바닥을 적셨다. 갑자기 아내가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잘못했어요. 당신 말대로 다 내 잘못예요. 내가 미친 여자예요.” 그녀는 어린애처럼 계속해서 흐느끼면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해요, 어서 해요. 네? 빨리 해주세요 . . . ” 그러면서 그녀는 조급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서둘러 시작하려 했을 때 그는 자기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음을 알았다. 어둠 속에서 무섭게 눈을 뜨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럴수록 몸 어느 한구석에서 시작한 무력감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빠른 속도로 몸 전체에 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아내의 몸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아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녀는 벗은 몸을 가리려고도 하지 않은 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그는 참담한 기분으로 눈앞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마당의 풀벌레들과 멀리 논배미의 개구리들이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울고 있었다.
그들이 서울로 돌아온 것은 이틀이 지난 뒤였다. 하기 싫은 일을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 바닷가에서 예정된 이틀을 마저 보냈다. 그리고 사흘째 그들은 서둘러 서울로의 귀로에 올랐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틀 밤밖에 비우지 않았지만 마치 길고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예감이 뒷머리를 친 것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마악 현관문의 손잡이에 꽂으려는 때였다. 그리고 그 예감은 손잡이를 비틀다 거짓말처럼 문이 비죽이 저절로 열리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세상에!” 아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떠나 있는 동안 그들의 보금자리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그들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도, 도둑이에요 여보!” 아내는 미친 듯이 큰 방과 작은 방, 화장실과 부엌으로 쫓아다녔다. 어느 곳이나 마치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것처럼 끔찍하도록 철저히 유린되어 있었다. 장롱문은 열려 있었고,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빼내어져서 옷가지들이 내장이 드러나듯 참혹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다. 휴가철을 노리는 빈집털이 도둑들이 하필이면 그들의 집을 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필이면’ 하는 불운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것도 철저히 파괴될 수 있다는 끔찍한 증거처럼 보였다. 대담하게도 밤참이라도 해먹었는지, 라면 가닥과 김치 쪼가리가 함부로 흩어져 있었고, 부엌에서부터 방 안까지 라면 국물이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것이 무슨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는 듯했다.
“어떻게 해요, 여보! 경찰에 신고해야죠.”
아내는 아직도 몸을 떨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때까지 그는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으므로, 경찰이란 낱말을 기억해낸 아내가 신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근데 우리가 무얼 잃어버렸는지 알아야지?”
그들은 열려진 서랍과 흩어진 옷가지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TV는 물론 제자리에 있었고, 몇 안 되는 철 지난 옷가지들이 든 장롱 서랍에서도 당장은 없어진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어머, 카세트 녹음기!” 하고 아내가 소리쳤지만 곧 그들이 휴가를 떠나면서 가져간 것을 기억해냈고, 유일한 결혼 예물인 두 돈쭝의 금반지는 아내의 손가락에 건재해 있었다.
“그런데,” 숨 가쁘게 여기저기 뒤져보던 아내가 갑자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한테 도둑맞을 물건이 뭐가 있죠?”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좁은 삶의 공간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이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채널 손잡이가 달아난 낡은 TV와 옷가지, 이젠 먼지나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책 나부랭이들 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내는 은행을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통장 같은 것은 있을 리 없었고, 그 흔한 카메라 하나 없었다. 그는 기가 막혔고, 동시에 무슨 허깨비에 홀렸다가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도둑놈들도 하필 우리처럼 젓가락 하나 가져갈 게 없는 집에 들어오다니, 미안해서 어쩌죠?”
그것도 농담이라고 하는지 아내는 바보처럼 맹한 얼굴로 뚱딴지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그들은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번 웃기 시작하자 웃음은 걷잡을 수 없이 비어져나왔다. 그래, 우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도둑이 들어도 집어갈 것 하나 없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엉뚱하게도 누구엔가 극적인 복수라도 한 것처럼 통쾌했던 것이다.
“미쳤어요, 당신?”
자기가 웃고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하는지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그에게 아내가 말했다. 어쩐 일인지 그는 아내의 그 말이 무슨 도발적인 유혹의 말처럼 자신의 몸 안 어딘가에 휙 불을 댕겨올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햇빛에 탄 아내의 콧등에 상처의 흔적처럼 피부가 한 점 얇게 벗겨진 것을 보았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장의 그림이 순간적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길고도 힘든 싸움에서 돌아와 승리를 자축하는 원시인들이 그러하듯, 도둑들의 노략질이 지나간 이 끔찍스런 잔해들 위에서 아내와 그가 함께 벌이는 한바탕 신명 들린 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