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중
김소연
장난감의 세계
전화국을 지나
병원을 지나 삼거리에 밥 먹으러 나갔다
생선 한 마리를 오래 발라 먹었다
제 몸 몇 배쯤의 나방을
머리통만 야무지게 먹고서 나머지를 툭 버려버리는
도마뱀을 지켜보면서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어떤 절규가 하늘을 가로질러 와 발밑에 떨어졌다
나는 오후에 걸쳐 있었고 수요일에 놓여 있었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없었던 것들이 자꾸 나타났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졌다 이를 테면
장난감을 선물 받은 가난한 아이처럼
믿어지지 않게 믿을 수 없게
아침에만 잠시 반짝거리는 수만 개의 서리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오전엔 강 건너 소가 소에게 뿔을 들이받았고
오후엔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물고 다녔다
개구리야, 너는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었단다
그때 나는 장난감의 내부를 꼭 뜯어보고야 말았지
개구리를 따라 강가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강가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깊어 빠져 죽기에 충분했다
평택
벌거벗은 사람이 되어 부끄럽게 서 있던 그 자리에
더 벌거벗은 한 사람이 나타나 오랫동안 당당하게 울었다
자궁에 손을 넣어
사산된 새끼를 꺼낸 경험을 들려주던
경마장 남자의 껍질 같은 손을 보았다
아픈 말 [馬]을 사람들은 고기라고 부른다고
치킨을 나눠 먹으며 나는 고기로 앉아
헐벗어가고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하며 한 남자가
작별 인사처럼 해준 말이었다
직장에 다닌 시간보다
해고된 채로 농성을 하고 있는 시간이 더 오래되었다며
벌거벗은 채로
나는 겨우 신발을 신었다
죽는 순간엔 굳은살도 다 풀린다고
그걸 직접 봤다는 남자와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걸었다
기차는 레일 위로 당당하게 달렸다
희망이 고문에 가깝다고 말하는 친구가 옆에 앉았다
희망이 고기에 가깝다는 말로 들었다
사람을 만난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어딘가가 깊이 파였고
더 이상 무섭지는 않았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빗방울에 얼굴을 내미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뻔했을 때
너,
살면서 나는…… 살면서 나는……
그런 말 좀 하지 마
죽었으면서
귀가 아프네
나는 얼굴을 바꾼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가면이 열리는 나무였다면
가지 끝이 축 처졌을 것이다
아니, 부러졌을 것이다
사실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깨로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다가갔다 물러섰다,
빗방울이 앉았다 넓어졌다 짙어지는
우리의 어깨가
얼룩이 질 때
유리창 같다, 니 어깨는……
고막이 있니, 니 어깨는……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빗방울의 차이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
빗방울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사람이 되어서
전화국을 지나
병원을 지나 삼거리에 밥 먹으러 나갔다
생선 한 마리를 오래 발라 먹었다
제 몸 몇 배쯤의 나방을
머리통만 야무지게 먹고서 나머지를 툭 버려버리는
도마뱀을 지켜보면서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어떤 절규가 하늘을 가로질러 와 발밑에 떨어졌다
나는 오후에 걸쳐 있었고 수요일에 놓여 있었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없었던 것들이 자꾸 나타났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졌다 이를 테면
장난감을 선물 받은 가난한 아이처럼
믿어지지 않게 믿을 수 없게
아침에만 잠시 반짝거리는 수만 개의 서리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오전엔 강 건너 소가 소에게 뿔을 들이받았고
오후엔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물고 다녔다
개구리야, 너는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었단다
그때 나는 장난감의 내부를 꼭 뜯어보고야 말았지
개구리를 따라 강가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강가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깊어 빠져 죽기에 충분했다
평택
벌거벗은 사람이 되어 부끄럽게 서 있던 그 자리에
더 벌거벗은 한 사람이 나타나 오랫동안 당당하게 울었다
자궁에 손을 넣어
사산된 새끼를 꺼낸 경험을 들려주던
경마장 남자의 껍질 같은 손을 보았다
아픈 말 [馬]을 사람들은 고기라고 부른다고
치킨을 나눠 먹으며 나는 고기로 앉아
헐벗어가고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하며 한 남자가
작별 인사처럼 해준 말이었다
직장에 다닌 시간보다
해고된 채로 농성을 하고 있는 시간이 더 오래되었다며
벌거벗은 채로
나는 겨우 신발을 신었다
죽는 순간엔 굳은살도 다 풀린다고
그걸 직접 봤다는 남자와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걸었다
기차는 레일 위로 당당하게 달렸다
희망이 고문에 가깝다고 말하는 친구가 옆에 앉았다
희망이 고기에 가깝다는 말로 들었다
사람을 만난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어딘가가 깊이 파였고
더 이상 무섭지는 않았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빗방울에 얼굴을 내미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뻔했을 때
너,
살면서 나는…… 살면서 나는……
그런 말 좀 하지 마
죽었으면서
귀가 아프네
나는 얼굴을 바꾼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가면이 열리는 나무였다면
가지 끝이 축 처졌을 것이다
아니, 부러졌을 것이다
사실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깨로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다가갔다 물러섰다,
빗방울이 앉았다 넓어졌다 짙어지는
우리의 어깨가
얼룩이 질 때
유리창 같다, 니 어깨는……
고막이 있니, 니 어깨는……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빗방울의 차이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
빗방울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사람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