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김기택

솔잎도 처음에는 널따란 잎이었을 터.
뾰족해지고 단단해져버린 지금의 모양은
잎을 여러 갈래로 가늘게 찢은 추위가 지나갔던 자국.
파충류의 냉혈이 흘러갔던 핏줄 자국.

추위에 빳빳하게 발기되었던 솔잎들
아무리 더워져도 늘어지는 법 없다.
혀처럼 길게 늘어진 넙적한 여름 바람이
무수히 솔잎에 찔리고 긁혀 짙푸르러지고 서늘해진다.

지금도 쩍쩍 갈라 터지고 있는 껍질의 비늘을 움직이며
구불텅구불텅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는 늙은 소나무.
그 아래 어둡고 찬 땅 속에서
우글우글 뒤엉켜 기어가고 있는 수많은 뿌리들.

갈라 터진 두꺼운 껍질 사이로는
투명하고 차가운 피, 송진이 흘러나와 있다.
골 깊은 갈비뼈가 다 드러나도록 고행하는 고승의
몸 안에서 굳어져버린 정액처럼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