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높고 푸른 사다리 3 부에서
공지영
13.
“전쟁은 모든 이에게 살인 면허를 준다, 요한.”
할머니는 다시 나를 응시했다. 70이 넘은 할머니와 이렇게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손자여서 행복하다고 나는 예전에도 늘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알았다. 할머니가 왜 아버지와는 이런 이야기 를 나누지 않았는지. 하느님이 반공주의자라고 굳게 믿는 아버지와 말 이다.
“전쟁은 인간의 진화를 거역하고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 는 자들의 승리와도 같단다.”
할머니는 잠시 진저리를 쳤다.
“죽음의 숫자 같은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다. 큰 경지에서 본다 면 가만 놔두었어도 그들은 이미 거의 다 죽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 것이 아니라 전쟁이 우리에게 유혹하는 것이다. 모든 강한 악의가 그 렇듯 전쟁은 우리에게 모든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선의를 빼앗아 간다. 생명의 보존이 모든 것에 앞서게 되면 인간은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하고 이 세상은 순식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한단다. 나는 거기서 지옥 을 보았단다. 하느님이 설사 죽어서 나를 지옥에 보내신다 해도 전쟁 을 겪은 인간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을 거다. 알겠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면 어제 인사를 드렸던 이웃집 아저씨가 내 장이 터진 채로 집 앞길에 쓰러져 있다. 벌거벗은 채 꽁꽁 얼어서 말이 다. 이미 옷은 누군가가 다 벗겨 간 상태. 평소에 미웠던 이웃집 사람 을 누군가 끌고 가 밤새 죽인다 해도, 평소에 눈독을 들여놓았던 건넛 마을 처녀를 끌고 가 강간하고 목 졸라 죽인다 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 는다. 약한 인간은 자기보다 좀 더 강한 자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설상가상 시련처럼 강추위가 닥쳐오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포탄이 쏟아져 내렸다. 중공(지금의 중국이지)군들이 밀 려온다는 소문이 온 시내를 휩쓸었다. 중공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너무도 컸단다. 이미 소련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난 후였던 우리, 일본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당하고 나서 겨우 동포라는 북한군들을 보 았는데 이젠 미군에 다시 중공군까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끝도 없는 피난 행렬이 남으로 남으로 줄을 짓고 있었다. 멀리서 들리던 폭격 소리가 더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거 의 만삭에 가까운 배를 안고 나도 네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흥남에 도착했다. 영하 20도. 남의 집 헛간에서 선잠을 자면서 걸어온 길. 그런데 앞은 막막한 바다였다. 떠 있는 건 모두 미국 배들이었는데 군인들 외에는 누구도 배를 탈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져 있 다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매실주를 한 잔 더 마셨다.
14.
“영하 20도의 바다에 아기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남쪽 으로 가는 거라면 뭐라도 얻어 타기 위해 사람들은 영하 20도의 바다 로 들어갔고 거기서 업고 있거나 안고 있던 아기들을 놓치고 만 거였 다. 통곡 소리는 이제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때 우리 앞에 서 있는 어떤 배 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좀 작은 배였다. 이 모진 파도를 헤치고 남쪽까지 갈 수 있을지도 의심되는 그 런 작은 배. 나는 그 배를 타려고 달려들었으나, 타지 못했다. 우리 눈 앞에서 배가 출발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곧 가라앉을 거 같았 다. 네 할아버지, 그래 젊은 그가 나를 만류했다. 눈앞에 둥둥 떠가던 그 배는 정말로 가라앉을 거 같았다. 부둣가의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가진 거 다 던져! 배가 가라앉는다!’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은 지고 있던 보따리를 다 내던지기 시작했 다. 이불 보따리, 식량 보따리까지. 그러고도 배는 아직도 가라앉을 듯 위태해 보였다. 더 앞으로 가지 못했어. 아마도 더는 던져버릴 것이 없 었던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을 보고 말았단다.
한 여자가 등에 아이를 업고 한 아이는 붙들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배 끝에서 반쯤 허리를 뒤로 젖히고 몰려 있는 것이 보였어. 부두에 앉 은 우리에게도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지.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이 들렸 어. 거기에는 우리 성당 신도들도 타고 있었다. 모두가 북한에서 나름 고난을 겪은 선한 이들이었어. 그들이 방금 전, 그 배에 타기 전까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나는 보았지. 그런데 그들도 외쳤다.
‘이 빨갱이! 빨갱이 종자들! 당장 이 배에서 내려!’
멀리서도 여자의 눈에 실린 공포가 보였다. 설마 사람들이 그녀 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과 고함에 몰린 그녀가 아이를 업은 채 찬 바다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곁에 선 예닐곱 살짜리 아이 도…….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파도 위 로 절망적인 여자의 얼굴이 허연 공처럼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이들 둘 역시…….
나는 전쟁이 내게 보여준 이런 장면을 그 후로도 백 번은 더 보았다 고 말할 수 있다, 요한.”
15.
“그 광경을 본 그는 겁에 질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 누군가 그 를 가리켜 ‘너 공산당원이지?’ 하는 순간 우리의 목숨은 공개적으로, 야만적으로 누구의 제지도 없이 사라질 그런 공포. 공습은 하늘에 있 고 폭격은 등 뒤에 있고 망망대해는 눈앞에 있고 이제 내 곁에 있는 같 은 처지라고 믿었던 피난민들마저 언제든 손가락질 하나로 나와 그 그 리고 내 배 속의 아이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사형집행인처럼 변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모든 민간인은 이제 더 이상 부둣가로 다가오 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려졌다. 부둣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을 놓 치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들, 그렇게 아이의 손을 놓치고 그렇게 남편과 아이와 헤어 진 사람들의 고함과 울음소리…….
그러다 우리 앞에 홀연히 배 하나가 나타났다. 그냥 배가 아니라 내게는 갑판의 끝이 하늘에 닿아 있는 듯했던 너무도 커다란 배. 사 람들이 그리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보았어. 그때 하늘로 솟은 그 배의 높은 난간에서 홀연히 풀어져 내려오던 사다리를.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성서에 나오는 야곱이 보 았다는, 하늘로 오르는 통로, 천사들이 오르내리던 사다리가 그것보 다 황홀했을까.”
이건 어떤 공감각의 작용이었을까. 순간 나는 내 귓가로 수도원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서 풀어져 내려오는 사다리의 환 영은 그러므로 이미 그때 할머니의 배 속에 있었던 아버지와 그 피를 이은 나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미 나에게 주의 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70이 넘은 양반이 한여름 대낮에 벌써 매실 주를 세 잔째 기울이고 있었다.
“나와 그도 그리로 달려갔다. 사다리를 오르면서 올려다보니 미국인 으로 보이는 서양인이 갑판에 서 있는데, 그때 나는 보았어, 손끝에 매 달린 묵주를. 나는 그때 살았다고 확신했다. 하늘에서 그 배를 보내주신 거라고 믿었지.”
할머니의 말이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갑각류라고 한 할머니. 나 는 언제나 그녀의 딱딱한 껍데기만을 보고 살았다. 그녀는 상처 입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입는다 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말했다. 일단, 상처가 그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면 그 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영원히 아픈 거란다, 갑각류는.
“전쟁은 모든 이에게 살인 면허를 준다, 요한.”
할머니는 다시 나를 응시했다. 70이 넘은 할머니와 이렇게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손자여서 행복하다고 나는 예전에도 늘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알았다. 할머니가 왜 아버지와는 이런 이야기 를 나누지 않았는지. 하느님이 반공주의자라고 굳게 믿는 아버지와 말 이다.
“전쟁은 인간의 진화를 거역하고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 는 자들의 승리와도 같단다.”
할머니는 잠시 진저리를 쳤다.
“죽음의 숫자 같은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다. 큰 경지에서 본다 면 가만 놔두었어도 그들은 이미 거의 다 죽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 것이 아니라 전쟁이 우리에게 유혹하는 것이다. 모든 강한 악의가 그 렇듯 전쟁은 우리에게 모든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선의를 빼앗아 간다. 생명의 보존이 모든 것에 앞서게 되면 인간은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하고 이 세상은 순식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한단다. 나는 거기서 지옥 을 보았단다. 하느님이 설사 죽어서 나를 지옥에 보내신다 해도 전쟁 을 겪은 인간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을 거다. 알겠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면 어제 인사를 드렸던 이웃집 아저씨가 내 장이 터진 채로 집 앞길에 쓰러져 있다. 벌거벗은 채 꽁꽁 얼어서 말이 다. 이미 옷은 누군가가 다 벗겨 간 상태. 평소에 미웠던 이웃집 사람 을 누군가 끌고 가 밤새 죽인다 해도, 평소에 눈독을 들여놓았던 건넛 마을 처녀를 끌고 가 강간하고 목 졸라 죽인다 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 는다. 약한 인간은 자기보다 좀 더 강한 자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설상가상 시련처럼 강추위가 닥쳐오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포탄이 쏟아져 내렸다. 중공(지금의 중국이지)군들이 밀 려온다는 소문이 온 시내를 휩쓸었다. 중공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너무도 컸단다. 이미 소련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난 후였던 우리, 일본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당하고 나서 겨우 동포라는 북한군들을 보 았는데 이젠 미군에 다시 중공군까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끝도 없는 피난 행렬이 남으로 남으로 줄을 짓고 있었다. 멀리서 들리던 폭격 소리가 더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거 의 만삭에 가까운 배를 안고 나도 네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흥남에 도착했다. 영하 20도. 남의 집 헛간에서 선잠을 자면서 걸어온 길. 그런데 앞은 막막한 바다였다. 떠 있는 건 모두 미국 배들이었는데 군인들 외에는 누구도 배를 탈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져 있 다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매실주를 한 잔 더 마셨다.
14.
“영하 20도의 바다에 아기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남쪽 으로 가는 거라면 뭐라도 얻어 타기 위해 사람들은 영하 20도의 바다 로 들어갔고 거기서 업고 있거나 안고 있던 아기들을 놓치고 만 거였 다. 통곡 소리는 이제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때 우리 앞에 서 있는 어떤 배 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좀 작은 배였다. 이 모진 파도를 헤치고 남쪽까지 갈 수 있을지도 의심되는 그 런 작은 배. 나는 그 배를 타려고 달려들었으나, 타지 못했다. 우리 눈 앞에서 배가 출발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곧 가라앉을 거 같았 다. 네 할아버지, 그래 젊은 그가 나를 만류했다. 눈앞에 둥둥 떠가던 그 배는 정말로 가라앉을 거 같았다. 부둣가의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가진 거 다 던져! 배가 가라앉는다!’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은 지고 있던 보따리를 다 내던지기 시작했 다. 이불 보따리, 식량 보따리까지. 그러고도 배는 아직도 가라앉을 듯 위태해 보였다. 더 앞으로 가지 못했어. 아마도 더는 던져버릴 것이 없 었던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을 보고 말았단다.
한 여자가 등에 아이를 업고 한 아이는 붙들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배 끝에서 반쯤 허리를 뒤로 젖히고 몰려 있는 것이 보였어. 부두에 앉 은 우리에게도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지.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이 들렸 어. 거기에는 우리 성당 신도들도 타고 있었다. 모두가 북한에서 나름 고난을 겪은 선한 이들이었어. 그들이 방금 전, 그 배에 타기 전까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나는 보았지. 그런데 그들도 외쳤다.
‘이 빨갱이! 빨갱이 종자들! 당장 이 배에서 내려!’
멀리서도 여자의 눈에 실린 공포가 보였다. 설마 사람들이 그녀 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과 고함에 몰린 그녀가 아이를 업은 채 찬 바다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곁에 선 예닐곱 살짜리 아이 도…….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파도 위 로 절망적인 여자의 얼굴이 허연 공처럼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이들 둘 역시…….
나는 전쟁이 내게 보여준 이런 장면을 그 후로도 백 번은 더 보았다 고 말할 수 있다, 요한.”
15.
“그 광경을 본 그는 겁에 질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 누군가 그 를 가리켜 ‘너 공산당원이지?’ 하는 순간 우리의 목숨은 공개적으로, 야만적으로 누구의 제지도 없이 사라질 그런 공포. 공습은 하늘에 있 고 폭격은 등 뒤에 있고 망망대해는 눈앞에 있고 이제 내 곁에 있는 같 은 처지라고 믿었던 피난민들마저 언제든 손가락질 하나로 나와 그 그 리고 내 배 속의 아이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사형집행인처럼 변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모든 민간인은 이제 더 이상 부둣가로 다가오 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려졌다. 부둣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을 놓 치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들, 그렇게 아이의 손을 놓치고 그렇게 남편과 아이와 헤어 진 사람들의 고함과 울음소리…….
그러다 우리 앞에 홀연히 배 하나가 나타났다. 그냥 배가 아니라 내게는 갑판의 끝이 하늘에 닿아 있는 듯했던 너무도 커다란 배. 사 람들이 그리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보았어. 그때 하늘로 솟은 그 배의 높은 난간에서 홀연히 풀어져 내려오던 사다리를.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성서에 나오는 야곱이 보 았다는, 하늘로 오르는 통로, 천사들이 오르내리던 사다리가 그것보 다 황홀했을까.”
이건 어떤 공감각의 작용이었을까. 순간 나는 내 귓가로 수도원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서 풀어져 내려오는 사다리의 환 영은 그러므로 이미 그때 할머니의 배 속에 있었던 아버지와 그 피를 이은 나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미 나에게 주의 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70이 넘은 양반이 한여름 대낮에 벌써 매실 주를 세 잔째 기울이고 있었다.
“나와 그도 그리로 달려갔다. 사다리를 오르면서 올려다보니 미국인 으로 보이는 서양인이 갑판에 서 있는데, 그때 나는 보았어, 손끝에 매 달린 묵주를. 나는 그때 살았다고 확신했다. 하늘에서 그 배를 보내주신 거라고 믿었지.”
할머니의 말이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갑각류라고 한 할머니. 나 는 언제나 그녀의 딱딱한 껍데기만을 보고 살았다. 그녀는 상처 입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입는다 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말했다. 일단, 상처가 그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면 그 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영원히 아픈 거란다, 갑각류는.